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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실 (BIDAN-Sil)


아홉 개의 악기와 오보에 독주를 위한 곡

1994년

비단실은 명주로 곱게 자아낸 부드럽고 윤기 있는 실을 가리키는 아름다운 한국말이다.

매우 섬세한 어떤 감정을 악기로 표현하려고 할 때 우리는 비단결 같은 선율을 추구한다. 하인쯔 홀리거(Heinz Holliger)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문득 우리의 고운 한글로 표현된 이 비단실의 개념을 떠올렸다. 하나의음이 완벽하기 위해서는 그음을 구성하는 음악적 요소들이 마치 여러갈래의 명주가 엮어 곱고 부드러운 비단실로 하나가 되듯이 윤기 있는 선율을 자아내야 한다.

작품 '비단실'은 무속전통을 뿌리로 발전해온 한국의 민속음악에 그 연이 닿아있다. 양반들이 가사, 가곡과 같은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민중은 이 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 즉흥적이면서도 정밀했던 음악은 연주자 스스로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했던 것으로 시나위라 불리운다.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면서 울리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음들이 마치 명주의 한올 한올이 비단실을 자아 내듯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어 냈다. 연주자 하나 하나가 이렇듯 자신의 역할을 다하므로서 전체적인 음악에 생동감을 주었다.

시나위 연주에는 주로 다음의 악기가 사용된다. 장고는 조율의 역할 뿐 아니라, 연주의 템포(속도), 박자 그리고 기본장단(리듬)을 관장하였다. 비단실로 꼬아 만든 현으로 소리를 내는 가야금, 아쟁, 거문고 등은 주로 북과 함께 연주된다.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튕겨서, 아쟁은 여린 개나리 가지를 다듬어 만든 활로 훑어서, 거문고는 나무활로 두드리거나 긁어서 소리를 낸다. 해금은 말총으로 만든 채로 소리를 내는 기악기(풍악기)로서 그 비단결 같은 소리가 여인네 음성에 가장 가깝다.  해금은 피리(오보에), 대금(플륫)과 함께 삼중주로 연주될 때 조화를 이루며 북과 함께 시나위 연주의 원 구성악기이다.

이 곡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것 즉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로 완성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시나위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시나위를 복구하거나 재생하고픈 의도는 전혀 없으며 이는 작곡가로서 가능한 일도 또 바람직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나위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안에 녹아있는 생동감을 더 절실하게 전하고자 했다.

박-파안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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