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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Flammenzeichen)


여성 독창곡 (1983)

히틀러 집권 50주년의 해인 1983년에 '민주주의의 파괴- 권력이양과 저항운동'이라는 제목아래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여성음악인-콘서트'에서 작품을 위촉 받고 나는 매우 오래 망설였다. 이 주제로 음악예술로서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기 위해 많은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이를 통해 놀랍게도 이제까지 알아왔던 독일과는 전혀 다른 독일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까지 반파쇼-저항운동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백장미 (Weisse Rose)' 라는 이름으로 당시 나치-파쇼정권에 대항했던 젊은이들, 소피와 한스 숄 등은 대학생의 신분으로 주변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나는 그들의 전단을 가사로 쓰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마지막 전단에서 "민족이여 깨어라, 봉화의 불꽃이 피어오른다"라는 민족사회주의자(나치)들의 투쟁가의 한 구절을 역인용하여 현혹되어  끌려가는 독일민족의 혼을 흔들어 깨우고자하였다. 나는 '백장미'를 당시 상황에 저항하는 봉화의 불꽃으로 보았기 때문에 '불꽃을 제목으로 삼았다.

가사에 인용된 것들은 마지막 부분에 항상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베껴서 나누어주십시오"라고 썼던 그들의 전단과 마지막 편지 두 편이며 추가로 구약성서의 전도서와 산상설교에서 발췌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사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한국의 전통적인 '판소리'의 형태를 빌려 소량의 타악기만이 함께하는 여성독창곡으로 만들었다.  '판소리'는 광대 한 명이 고수 한 명의 장단에 맞추어 일정한 내용의 이야기를 육성(아니리)과 몸짓(발림)을 곁들여 창극조로 전달하는 한국민속예술의 한 형태이다. 군악을 연상케 하는 북소리를 동반한 이유는 저항운동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함이다.

막강한 국가권력에 대항했던 이 놀라운 저항운동이 오늘날도 가슴아픈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당시와 비슷한 정치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에게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용기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소피와 한스 숄의 자매인 잉에 숄은 '백장미'에 대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전제독재의 엄중한 감시상황 아래서도 몇몇 학생들은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그들은 견고한 파쇼의 벽을 허물지 못하지만 균열이 생기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이상의 결과는 기대하지 않았으며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목표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 곡의 가사

보아라, 부당히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이 마를 날 없는데 위로해 줄 사람 아무도 없으며 그들을 억압하는 이들이 저리도 막강하니 어느 한 사람 감히 나서서 위로할 수 있겠는가 (1)

" 하늘아래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다시 살펴보았더니, 그 억울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데 위로해주는 사람도 없더구나. 억압하는 자들이 권력을 휘두르는데 감싸주는 사람도 없더구나" (1)
- 전도서 4장 1절 -

  

이 전단을 받는 분에게 부탁드립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본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1)

언젠가는 누군가가 시작을 해야합니다. 우리가 말로 또 글로 전하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으나 표현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

누가 죽은자들을 헤아려 보았는가? (1)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베껴서 나누어주십시오 (1)

용서하세요, 사랑하는 어머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은 오직 하나"이 길 밖에는 없다" 는 것입니다... (3)

... 저 때문에 울지 마세요... (4)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베껴서 나누어주십시오 (1)

악(惡)함이 극에 달해 있을 때 바로 그 때가 바로 공격해야 합니다. (1)

그 누가 죽은자들을 헤아려 보았는가? (1)

우리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아픈 양심이기에; 백장미는 여러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1)

저항운동을 지원해주십시오, 전단을 널리 돌려주십시오. (1)

백장미 전단 외의 가사 (5)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이들에게는 복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5장 (산상설교) 6절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정의때문에 추적받는 이들만이 천당에 갈 것이다.)
마태복음 5 장 10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들이 세상의 소금이다.)
마태복음 5 장 13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들이 세상의 등불이다.)
마태복음 5 장 14절

인용출처:

(1) 'Weisse Rose(백장미)'의 전단, Inge Scholl, Die Weisse Rose, Frankfurt/M. 1977

(2) 1943년 2월 22일 뮌헨의 법정에서 Sophie Scholl이 한 말. Richard Hanser의'Deutschland zuliebe(독일을 위하여)' 중에서 , Muenchen 1982

(3) Franz Mittendorfer의 마지막 편지, P. Malvezzi/ G. Pirllei (Herg), 'Und die Flamme soll Euch nicht versengen (불꽃에 휘말리지 않기 위하여)' 중에서, Zuerich 1955

(4) Kurt Huber교수의 마지막 편지. Guenter Weisenborn, 'Der lautlose Aufstand (소리없는 항거)' 중에서, Frankfurt/M. 1974

(5) 공동번역 성서(카톨릭 용), 대한 성서 공회, 1977


1943년 2월 22일 백장미-관련자 사형날짜를기리며

1983년 박-파안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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