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 Younghi Pagh-Paan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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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신굿


4개의 타악기와 전자음향을 위한 곡 (1992년)

한스 외쉬(Hans Oesch)를 추모하며

지신굿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한국의 전통적인 농악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다. 지신굿은 고대의 무속의식의 하나인데 아직도 민속놀이의 형태로 남아있다. 해마다 정월이면 네다섯 명으로 구성된 농악대가 온 마을의 집들을 차례로 돌면서 그 집안의 복과 무사태평을 비는데 이때 농악으로 땅의 신을 위안하여 가족이 건강하고 풍년이 들도록 기원해 주는 풍습이다.

한자의 무(巫)는 뜻을 풀면 땅과 하늘과 인간 한 쌍이 된다. 인간과 땅과 하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의 매개자로 나타난다. 땅에 대해 관대하기를 하늘에 간청하는, 춤을 추는 한 쌍의 남녀는, 모든 의식(儀式)의 근원이다. 무속은 인간의 영혼이 하늘에서 와서 다시 하늘로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과는 달리 땅에서 나와 땅으로 되돌아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땅은 많은 영혼의 안식처이고 모든 또 영혼이 화해하고 편안히 쉬는 곳이다.

4개의 타악기를 위해 작곡된 이 의식 즉 굿은 전자음향으로 보완하도록 구성하였다.

이 곡은 이제 현대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이미 어린아이들의 방으로까지 침입한 컴퓨터 도깨비에 대한 의식(儀式)을 상징하였으며 '일회용사회'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쓰여졌다. 피상적인 사용 후 보다 완벽하고 편리한 신형기기를 사들이는 현대인의 경박한 성향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악기인 북의 소리와 이미 신형이라 부를 수 없는 음향기기의 음을 동등하게 편성하였다. 새로운 기기에 대한 종속적인 굴복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로 받아드리고 또 적극적인 활용을 통하여 원초적인 소리를 구하고자 하였다.

1994년 박-파안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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